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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책을 읽는 시대, 전 세계 헌책방에 수상한 대량 주문… 오래된 책들이 사라지는 이유

u_e8ff6cba 읽는 시간 약 7분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찾기 어려운 오래된 전문서적들이 뜻밖의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곳곳의 중고서점에서 수년간 팔리지 않던 책들이 갑자기 대량으로 판매되는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별한 점은 책의 종류다. 일반 독자들이 즐겨 찾는 베스트셀러보다는 의학, 역사, 법률, 철학 등 전문적인 내용을 다룬 오래된 책들이 구매 대상에 포함됐다.

책을 주문하는 구매자의 정체도 불분명한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 인공지능(AI) 기업들의 학습 데이터 확보 경쟁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오래된 종이책의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AI 시대에 오래된 종이책이 다시 필요한 이유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발전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생성형 AI 역시 인터넷에 공개된 문서와 각종 출판물 등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언어와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인터넷에 존재하는 정보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래전에 출판된 전문서적이나 절판된 학술자료 가운데는 아직 디지털 형태로 공개되지 않은 자료도 많다.

특정 분야의 연구 기록이나 지역의 역사처럼 인터넷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정보가 종이책 안에 남아 있는 것이다.

AI 개발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자료가 새로운 학습 데이터의 공급원이 될 수 있다.

특히 기존 온라인 자료만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전문지식과 다양한 문체를 수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래된 출판물의 가치가 커지고 있다.

한때 서점의 창고를 차지하던 책들이 AI 산업의 데이터 확보 경쟁 속에서 새로운 관심을 받는 셈이다.

해외 중고서점에서 나타난 뜻밖의 판매 증가

영국 BBC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해외 언론은 최근 중고서점에서 발생한 이례적인 대량 주문 사례를 보도했다.

영국 노섬벌랜드의 중고서점 바터북스는 캐나다 업체로부터 평소 일주일 판매량에 해당하는 규모의 주문을 한꺼번에 받았다.

30년 동안 중고서점 사업을 해온 운영자에게도 낯선 경험이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희귀서적 판매상 역시 평소 수요가 많지 않던 전문서적들이 판매되면서 매출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확인됐다.

독일 공영방송 NDR은 베를린의 전문서적 판매상들이 오래된 책을 대상으로 한 대량 주문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일부 판매상은 이러한 주문이 AI 학습 자료를 확보하려는 기업들과 관련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다만 모든 주문의 최종 구매자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대량 구매 현상이 실제로 나타났다는 사실과 구매 목적이 AI 학습이라는 추정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책을 디지털로 보관하면서 원본은 없앤다?

이번 현상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종이책을 디지털 자료로 만드는 방식 때문이다.

일반적인 책 스캔은 책장을 넘기면서 내용을 촬영하는 형태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대량의 책을 빠르게 디지털화할 때는 제본된 부분을 잘라내고 낱장으로 분리한 뒤 스캐너에 넣는 방법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른바 파괴적 스캔 방식이다.

실제로 미국 AI 기업 앤스로픽(Anthropic)이 대규모로 종이책을 구매하고 디지털화한 뒤 원본을 폐기한 사실이 저작권 소송 과정에서 공개됐다.

미국 법원은 2025년 판결에서 적법하게 구매한 종이책을 내부 보관용 디지털 사본으로 전환한 행위를 해당 사건의 조건에서 공정 이용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 판단이 모든 도서 복제나 AI 학습 행위를 무조건 허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료를 확보한 경로와 이용 방식, 국가별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앤스로픽의 과거 스캔·폐기 사례가 확인됐다는 사실만으로 최근 세계 각국의 모든 헌책 대량 구매가 이 회사와 연결된다고 볼 수는 없다.

AI가 지식을 보관하면 종이책은 필요 없어질까?

이 문제는 단순히 책을 구매한 뒤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종이책은 내용을 전달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시대의 기록을 보존하는 물리적인 자료이기도 하다.

같은 책이라도 출판 연도, 판본, 저자의 서명, 독자의 메모 등에 따라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닐 수 있다.

특히 출판 부수가 적거나 현재 구하기 어려운 자료라면 실물의 보존 가치가 더욱 클 수 있다.

책의 내용을 디지털 데이터로 남기는 것과 원본 자체를 보존하는 일은 반드시 같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AI가 책의 내용을 학습했다고 해도 그 원본을 일반 독자나 연구자가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반면 디지털화가 지식 보존에 도움이 된다는 시각도 있다.

훼손될 위험이 있는 오래된 문헌을 디지털 형태로 보관하면 검색과 관리가 쉬워지고, 적절한 공개 체계가 마련될 경우 더 많은 사람이 자료를 활용할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디지털화 자체보다 원본의 보존 여부와 디지털 자료에 대한 접근 권한이다.

헌책방의 호황이 남긴 새로운 질문

중고서점 운영자에게 오래된 책의 대량 판매는 분명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수 있다.

오랫동안 판매되지 않던 재고가 정리되고, 서점의 매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매된 책이 다시 사람의 손에 들어가 읽히는 것이 아니라 스캔 후 폐기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희귀한 자료가 사라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단순한 매출 증가만으로 해소하기 어렵다.

AI 산업은 앞으로도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필요로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과정에서 오래된 책과 출판물의 가치는 더욱 주목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술 발전을 위해 확보한 지식이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 자산으로 남을 것인지, 일부 기업의 내부 데이터로만 보관될 것인지는 별도의 문제다.

전 세계 헌책방에서 시작된 낯선 주문은 AI 시대에 우리가 지식을 어떻게 보존하고 공유해야 하는지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참고자료

월스트리트저널(WSJ), AI 학습과 희귀서적 구매 관련 보도 (2026년 9월)

BBC News, 세계 중고서점 대량 주문 관련 보도 (2026년 8월)

독일 ARD·NDR, 중고서적 대량 구매 관련 보도 (2026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연방지방법원, 앤스로픽 저작권 소송 판결문 (2025년 6월)

사실관계 확인 자료:

W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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